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이유, 나이, 가족, 5·18 진실 밝힐 마지막 증인

by 7d2dd 2026. 9. 13.
반응형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 신군부 마지막 생존자가 떠났다

2026년 9월 13일 오전, 94세의 나이로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 끝내 눈을 감았습니다.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숨을 거뒀는데요, 이분이 누구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오늘은 좀 자세히 정리해봤습니다. 솔직히 뉴스 보다가 깜짝 놀랐거든요. 신군부 핵심 5인 중 마지막으로 살아 있던 분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나더라고요.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였습니다. 하나회 핵심 인물로,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특전사령관에 오르면서 신군부 권력의 중심에 섰죠. 근데 그게 단순한 출세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빈소 아주대병원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전 행적 – 5·18 당시 어떤 역할이었나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 당시 투입된 3·7·11공수여단은 바로 정호용 특전사령관 휘하 부대였습니다. 시민들을 향한 무자비한 진압이 이뤄지던 그 시절, 지휘 책임선상에 있던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혀왔는데요.
정 전 장관은 줄곧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계엄사령부 등 다른 작전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기 때문에, 특전사령관인 나에게는 지휘 권한이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이 수십 년 동안 핵심 쟁점이었는데요.
그런데 이후 조사에서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81시간을 광주에서 보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뒤늦게 광주 방문 자체는 인정했지만, "작전 지휘가 아니라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주요 이력 정리

1932년대구 출생
1955년육군사관학교 11기 졸업, 육군 장교 임관
1979년 12월12·12 반란 간접 참여 후 육군특전사령관 취임
1980년 5월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여러 차례 방문, 예하 부대 지휘 관여 의혹
1988년국회 5·18 진상조사특위 청문회 증인 출석
1997년대법원 징역 7년 확정
1997년 12월전두환·노태우와 함께 특별사면
2024년5·18진상조사위,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재고발
2026년 9월94세로 별세 –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위 표를 보면 정 전 장관의 삶이 12·12와 5·18이라는 두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얽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재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됐음에도 같은 해 사면을 받았다는 부분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아쉬워하는 대목입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 사진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 – 40여 년 동안 사죄는 없었다

제가 이 뉴스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건 '참회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대목이었습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된 이후에도, 피해자들을 향한 공식적인 사죄 한마디가 끝내 없었거든요.
2021년에는 '진실을 밝히고 사죄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요, 실제로는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5·18 진상조사위원회의 대면조사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서면 진술서는 두 차례 제출했지만, 대면조사에는 끝끝내 응하지 않았습니다. 근데 그 서면 진술에서도 기존 입장, 즉 작전 지휘 책임 부인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하더라고요.

12·12 반란 신군부 인사 현황표

신군부 핵심 5인 별세 현황

전두환보안사령관2021년
노태우수도경비사령관2021년
황영시계엄부사령관2022년
이희성계엄사령관2022년
정호용특전사령관2026년 (마지막 생존자)

위 표에서 보듯이 신군부 핵심 5인이 2021년부터 2026년 사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으로 이제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진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사라진 셈입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빈소 장례식장

5·18 진상규명, 이제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

5·18진상조사위원회는 2024년 정 전 장관을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재고발한 바 있었습니다. 광주 재진입 작전(상무충정작전) 당시 병력을 동원·지휘한 사실과 추가 희생자가 확인됐기 때문이었는데요.
조사위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정 전 장관이 처음 광주에 내려온 5월 20일에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성격의 회의를 주재했고,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사회를 봤다는 복수의 진술도 확보됐다고 합니다. 또 전교사 상황실 2층에 특전사령부 전용 상황실을 꾸려 운영한 사실, 5월 26일 밤 광주로 내려와 27일 새벽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배분한 사실 등도 포함됐습니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서 조사위는 "정 전 장관이 공수부대 지휘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거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끝까지 대면조사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참 답답하더라고요.

신군부 핵심 5인 5.18 관련 자료

아직 밝혀지지 않은 5·18 과제들

발포 결정 과정누가 최초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미확인
신군부 수뇌부 개입 정도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역할 불명확
행방불명자 소재암매장 의혹 포함, 실종자 위치 불명
민간인 집단살해 책임 소재최종 명령 체계 및 책임자 규명 미완

위 표를 보면 아직도 5·18과 관련해 규명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 사망으로 핵심 당사자에게 직접 진실을 확인할 기회는 사라졌지만, 5·18기념재단 박강배 상임이사의 말처럼 "기록과 자료를 통해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사진

마무리 – 기록만이 남은 진실 찾기

이 뉴스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참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건 그 자체로 무거운 일인데, 동시에 40여 년 동안 피해자들이 기다려온 직접적인 사죄와 고백의 기회가 영영 사라졌다는 생각도 드는 거죠.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고도 참회 없이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아마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발포 지휘체계, 행방불명자 소재, 민간인 집단살해의 책임 소재 같은 굵직한 의문들은 이제 기록과 자료에만 의존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역사의 진실이 더 이상 미뤄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반응형